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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 book

[한지혜] 엄마와 아이의 관계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도 기억난다. 아이를 씻기고 몸을 말리고 보습제를 발라주고 포근한 담요로 감싸 안고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태어나던 무렵 물이 오르던 나무는 그새 꽃도 피우고 잎도 무성하게 달았다.

저것은 무슨 나무, 저것은 무슨 꽃 하며 눈 감고 조는 아이를 붙잡고 설명하다 퍼뜩 깨달았다. 내게는 가장 작은 이 반경이 이 아이에게는 태어난 이후 경험한 가장 큰 세상이 되겠구나.

훗날 아이가 자라서 저 혼자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될 때까지 내가 움직이는 거리, 내가 움직이는 세상이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의 전부가 될 것이었다. 이 아이가 만나는 세상의 처음과 끝을 모두 내가 결정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의 설렘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또 이런 날도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도 지치고, 나에게도 지쳐서 아이를 재운다고 누운 채 엉엉 소리내어 울었는데, 가슴팍에 얼굴 묻고 졸려 하던 아이의 고사리 손이 어느 틈에 내 등을 토닥토닥 위로하듯 두드려주고 있었다.

그 손길을 느끼던 순간, 위로받았다는 따뜻함과 동시에 이 어린아이가 기약할 수 없는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내가 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겠구나 싶어 뭉클해지던 마음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모성애를 믿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희생의 결정체라는 모성신화를 믿지 않는다. 두렵지 않은 사랑이,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 안의 어떤 숭고함보다는 욕망과 허세와 미성숙을 더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이건 어디까지나 너를 위한 거야 라고 말하지 않았다. 학습을 시키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든 아이를 위한 그 모든 행동에는 아이는 물론 나 자신을 위한 욕망도 분명히 숨어 있다.

욕망을 품은 사랑이 자랑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욕망을 채우면서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너를 사랑해서,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위선은 떨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내 욕망을 정직하게 바라볼 참이다. 그걸 섣불리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 그게 아이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이라고 믿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잃어버린 자신의 서사를 복원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어떤 마음이 읽어지지 않을 때,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전할 수 없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나 자신과 대화하듯 아이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 대화가 가능할 때, 아이도 나도 늘 행복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학적 수사대로 인생이 길이고 우리가 나그네라면, 아이는 길고 긴 길에서 만난 동반자이지 인생의 끝까지 메고 갈 괴나리봇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짊어지고 갈 마음도 없다. 대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혹은 조금 빨리 걸어주고 원할 때 손 내밀어주는 딱 그만큼의 동반, 딱 그만큼의 연대를 가져볼까 한다. 앞으로도 잘해보자, 내 아가. 내 어린 친구.

글. 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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